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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위성서 ‘새 물체’ 쏘아 올려..우주 무기 실험 증거”
미·영 우주군 수장 “우주 평화적 사용 및 다른 위성에 위협”

존 레이먼드 미 우주사령관 [EPA=연합뉴스]
존 레이먼드 미 우주사령관 [EPA=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세계 강국이 우주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가운데 미국과 영국이 러시아가 신형 우주 무기 실험을 했다며 이를 일제히 비판했다.동행복권파워볼

23일(현지시간) CNN방송에 따르면 미 우주사령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지난 15일 ‘코스모스 2543’ 위성에서 새로운 물체를 궤도로 쏘아올렸다면서 “러시아가 우주 기반 위성 공격용 무기의 비파괴적 실험을 실시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우주사령부는 이 ‘새 물체’가 다른 러시아 위성 부근으로 발사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찰용 위성이라던 임무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 우주군을 지휘하는 존 레이먼드 사령관은 “궤도상에서 무기 실험을 벌인 러시아의 위성 시스템은 올 초 러시아가 미 정부 위성에 접근해 우리가 우려를 제기했던 것과 같은 시스템”이라며 “이는 러시아가 우주 기반 시스템을 개발하고 시험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레이먼드 사령관은 이어 “미국과 동맹국의 우주 자산을 위험하게 할 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러시아의 군사교리와도 일치한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우주 담당부서 수장인 하비 스미스 공군 소장도 성명을 내고 “이런 행위는 우주의 평화적 사용을 위협하며, 잔해는 세계가 의존하는 우주 체계와 다른 위성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규탄했다.

지난해 8월 미 우주사령부 창설 선포식에서 손을 맞잡은 레이먼드 사령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EPA=연합뉴스]
지난해 8월 미 우주사령부 창설 선포식에서 손을 맞잡은 레이먼드 사령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EPA=연합뉴스]

미국은 러시아의 위성 공격용 무기 실험을 두고 갈등을 빚어왔다. 미국은 지난 4월에도 러시아가 위성 공격용 미사일 시험을 했다고 비판했다.파워사다리

러시아와 중국의 위성 공격 무기는 미국이 우주에 특화한 부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 중 하나로, 결국 우주군이 창설됐다고 CNN은 보도했다.

미 위성은 항해부터 정보 수집, 무기 표적,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감시,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 활동 모니터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의 위성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순천=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전국에서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전남 지역에 의대 설립이 가시화되자 전남 순천시가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의대 신설 추진 의사 밝히는 김영록 전남지사 (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김영록 전라남도 도지사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방침에 따른 전남지역 의대 신설 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정부는 2022학년도부터 10년간 의과대학 정원을 매년 400명씩 총 4천명 늘리고 이 가운데 매년 300명씩 총 3천명은 지방의 중증 필수 의료 분야에 의무적으로 종사하는 지역 의사로 선발하기로 했다. 2020.7.23 jeong@yna.co.kr
의대 신설 추진 의사 밝히는 김영록 전남지사 (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김영록 전라남도 도지사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방침에 따른 전남지역 의대 신설 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정부는 2022학년도부터 10년간 의과대학 정원을 매년 400명씩 총 4천명 늘리고 이 가운데 매년 300명씩 총 3천명은 지방의 중증 필수 의료 분야에 의무적으로 종사하는 지역 의사로 선발하기로 했다. 2020.7.23 jeong@yna.co.kr

24일 순천시에 따르면 시는 전남 동부권에 의과대학 유치를 위해 순천대와 협력하는 한편, 의과대학과 대학병원 건립 부지를 확보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동행복권파워볼

순천대는 의과대학 부지를 물색하고 있으며 순천시는 시 소유지 가운데 2곳을 대학병원 부지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과대학 유치가 확정되면 순천시는 시의회의 의결을 받아 본격적으로 대학병원 건립에 나설 계획이다.

전남 동부권은 여수산단과 율촌산단 등 공장이 밀집해 산업 재해가 자주 발생하고 있지만, 화상 전문병원 등 응급센터가 없어 대도시의 의료시설에 의존해왔다.

100만명이 거주하고 영호남 교류의 거점인 만큼 코로나19 이후 지역 내 감염병 차단 전담병원 필요성도 제기돼 왔다.

허석 순천시장은 “전남 동부권은 의과대학 신설의 최적지인 만큼 순천대에 의과대학과 부설 병원이 건립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며 “순천대와 협력해 대학과 병원 건립 부지 마련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고, 이후의 행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승만 정권은 항일 무장투쟁 지도자 약산 김원봉의 네 형제를 사살했고, 박정희 정권은 살아남은 혈육을 연좌제로 옭아맸으며, 박근혜 정권은 후손이 낸 국가배상 민사소송을 기각했다.

ⓒ시사IN 조남진약산 김원봉의 막냇동생 김구봉의 유복자로 태어난 김용건씨가 가족사를 들려주고 있다.
ⓒ시사IN 조남진약산 김원봉의 막냇동생 김구봉의 유복자로 태어난 김용건씨가 가족사를 들려주고 있다.

서울에서 섬유업에 종사하는 김용건씨(69)는 항일 의열단을 이끈 약산 김원봉의 친조카다. 아버지 김구봉은 약산의 11남매(9남2녀) 중 막내다. 하지만 김용건씨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그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동하던 1950년 7월 초순, 당시 22세로 부산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아버지 김구봉은 경남 밀양의 자택으로 갑자기 들이닥친 군경한테 끌려갔다. 그는 세 형 김용봉, 김봉기, 김덕봉과 나란히 붙들렸다. 이렇게 체포된 약산의 네 동생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그대로 산골짜기에 끌려가 집단 총살을 당했다. 6·25전쟁 발발 후 밀양 지역에서 예비검속으로 체포된 국민보도연맹원 300여 명과 함께 살해당한 것이다.

국민보도연맹은, 이승만 정부가 1949년 좌익 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교화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단체다. 거의 강제로 조직해서 좌익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보도연맹원으로 다수가 등록되었다. 1949년 말엔 보도연맹원이 30만여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군경은 6·25 발발 직후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검속과 학살을 자행한다. 그 피해자 중 약산의 가족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승만 시대는 약산 김원봉의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을죄’가 되는 무시무시한 세상이었다. 약산 김원봉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가장 두려워했다는 독립운동가다. 일제가 백범 김구 선생에게 내건 현상금 60만원보다 40만원이나 많은 100만원을 약산에게 내걸 정도였다. 1919년 조선의열단(의열단)을 창단한 약산은 크고 작은 무장 독립투쟁을 주도했다. 1930년대에는 백범과 독립운동의 양대 거목으로 불릴 만큼 당시 항일 무장투쟁에서 걸출한 지도자였다. 조선의용대장, 민족혁명당 총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태평양전쟁 말기 임시정부 자력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벌여 독립을 쟁취하고자 분투했지만 미군의 원폭 투하로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광복을 맞았다.

약산이 귀국해 마주한 현실은 친일파가 득세하는 분단된 조국이었다. 1947년 2월 약산은, 독립군을 고문하던 친일 경찰로 악명을 떨치다가 광복 후 미군정 경찰로 옷을 갈아입은 노덕술에게 끌려가 뺨을 맞는 등 치욕을 당했다. 약산은 친일파가 득세하는 비참한 조국에서 몽양 여운형과 고하 송진우 등 민족 지도자들이 괴한의 흉탄에 쓰러지는 현실에 울분을 토하던 터였다. 그해 백범 김구와 함께 평양에서 열린 남북협상회의에 참석한 약산은 끝내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고 눌러앉았다. 비운의 서막이었다.

이후 약산은 이승만 정부에서 월북한 빨갱이로 낙인찍혔다. 북한에서도 약산은 1958년 ‘국제 간첩’(연안파)으로 몰려 숙청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6·25 개전 초기 고향인 밀양에서 살던 약산의 형제들을 붙잡아 학살한 뒤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유족에게 시신을 인계하기는커녕 학살 장소 출입조차 금지했다.

학살로부터 6개월여가 지난 1951년 초, 약산의 막냇동생 김구봉의 유복자 김용건이 태어났다. 생때같은 자식 넷의 목숨을 국가 폭력에 억울하게 빼앗긴 채 한 많은 생을 이어가던 약산의 노부모는 핏덩이인 손주 김용건을 거뒀다. 그때부터 용건은 조부모 품에서 자랐다. 그의 회고다.

“우리 할머니가 어떻게 잠을 자겠나. 매일 소주를 드시고 밀양 읍내 남천강 다리 위에서 한 시간 이상 죽은 네 아들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셨다. 나는 옆에 앉아서 ‘할매, 집에 가자’고 울며 보챘다. 실컷 울어야 집에 들어오시는 게 하루 일과였다.”

약산의 4형제가 한날한시에 학살당한 와중에도 구사일생으로 죽음을 모면한 사람이 있었다. 다섯째 김봉철이었다. 이후 그는 집안의 대들보가 되었다.

“다섯째 백부님은 군경이 체포하러 오자 밀양 집 앞 남천강에 뛰어들어 가까스로 피신했다. 밤을 틈타 마산으로 간 그는 항만 노역으로 목숨을 부지하며 전쟁 기간 내내 돈을 모았다. 약산 형제 중에서 그 백부님의 장사 수완이 제일 뛰어났던 모양이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전답과 재산을 크게 모아 밀양에서 최고 부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김봉철은 이렇게 악착같이 모은 재산으로 억울하게 학살당한 형제의 유족 생계를 지원하는 등 맏이 구실을 도맡았다. 또 군경의 총칼에 스러진 4형제의 처형 장소를 알아내 유골만이라도 거두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 치하에서는 헛수고였다.

마침내 1960년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4·19 혁명이 발발하면서 철옹성 같아 보이던 이승만 정권이 무너졌다. 약산 형제의 다섯째인 김봉철은 드디어 4형제의 억울함을 신원하는 일에 적극 뛰어들었다. 그는 6·25 초기의 억울한 민간인 학살사건 진상규명을 공약으로 내걸고 1960년 민선 밀양읍 의원에 출마해 당선했다. 이어 밀양지역 피학살자유족회장을 맡아 진상조사에 앞장섰다. 김봉철 유족회장은 당국의 발굴 허가를 얻어내 학살 현장에 대한 유해 발굴 작업도 벌였다. 여기서 보도연맹 피학살자 시신 300여 구를 발굴했다. 그는 장례위원장을 맡아 성대히 군민장을 치렀다. 어머니 뱃속에서 아버지를 잃었던 초등학생 김용건에게는 6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당시 유골 수습과 장례식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처럼 중장비가 있나 뭐가 있나,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미망인들과 할머니들이 삽과 호미만 가지고 몇 날 며칠 유골을 일일이 수습해서 밀양공설운동장에 모았다. 신원을 알 수 없으니 두개골은 두개골대로 팔은 팔대로 그렇게 구분해서 큰 나무 상자 하나에 차곡차곡 포장해 성대하게 군민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 우리 선산에 합동 봉분으로 모셨다.”

ⓒ5·16쿠데타인권침해사건 위원회1960년 경북 청도군에서 발굴된 밀양 지역 피학살자의 유골을 유족들이 수습하고 있다.
ⓒ5·16쿠데타인권침해사건 위원회1960년 경북 청도군에서 발굴된 밀양 지역 피학살자의 유골을 유족들이 수습하고 있다.

김원봉 혈육의 지독한 피해의식과 트라우마

그러나 이듬해(1961년) 박정희 소장이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 직후 김봉철은 민간인 학살의 진상규명을 주도한 일로 인해 체포되고 만다. 쿠데타 세력은 김봉철에게 혁명포고령 위반죄를 적용해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선고를 받은 백부님 구명 과정에서 그 많던 재산이 다 없어졌다. 대부분 논밭이라서 급하게 처분해 현금을 만들어야 하니 반값에 팔고, 헐값에 팔고…. 그렇게 해서 항소심에서 10년형으로 감형됐다.”

그러나 약산의 집안은 이 일로 또다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김봉철은 6년여의 오랜 감옥 생활 끝에 1960년대 말 석방됐다. 그러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자녀들은 거지가 돼 구걸로 연명하고 있었다. “백부님이 출소해보니 자식들은 그저 먹고사는 게 급해서 동냥하러 다니고, 구두 닦고. 그런 생활을 거치다 보니까 장성해서도 옳은 직업을 구할 수가 없었다.”

성인이 된 약산의 다른 조카들도 모두 연좌제에 신음하며 숨죽여 지내고 있었다. 5·16 쿠데타 후 중앙정보부(중정)는 약산의 형제들을 더욱 옥죄었다. 살아남은 약산의 동생들에게는 중정 요원들이 찾아와 6개월에 한 번씩 근황을 신고하도록 조치했다. 당시는 약산 김원봉이 북한에서 숙청(1958년)된 뒤였지만, 중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봉철 백부님은 기막힌 가족사와 군사독재의 감시 속에 여생을 술로 보내셨다. 술 마시면 고래고래 박정희 욕을 하며 그나마 속을 달래다가 끝내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박정희 정권 아래서 약산의 친인척에게는 지독한 연좌제의 굴레가 덧씌워졌다. 약산의 한 조카는 사법시험 1, 2차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지만 연좌제에 걸려 면접에서 탈락했다. 그는 오랜 세월 트라우마에 신음하며 숨어 지내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약산의 독립운동이 오랜 금기를 깨고 조금이나마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화 〈암살〉과 〈밀정〉은 뒤늦게나마 후세들에게 약산의 독립운동 공적을 어렴풋하게라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창 노릇을 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 속에서도 약산의 후손들은 좀체 ‘커밍아웃’하려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오랜 침묵을 깬 이가 6·25 개전 초기 학살당한 약산의 막냇동생 김구봉의 유복자인 김용건씨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출범했다. 김용건씨는 약산 후손들의 억울한 사연을 담은 진정서를 써서 진화위의 문을 두드렸다. 약산의 동생이라는 이유 하나로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네 동생의 사연과, 5·16 쿠데타 이후 백부 김봉철씨가 민간인 학살 진상을 규명하려다 겪은 억울한 감옥살이에 대한 사연이었다.

김용건씨의 이런 움직임에 다른 혈육들은 손사래를 쳤다. 어떻게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상 바뀌면 언제 또 끔찍한 탄압이 닥칠지 모른다’는 지독한 피해의식과 트라우마를 지울 수 없었다.

진화위는 4년에 걸쳐 밀양 현지를 여러 차례 답사하며 조사를 벌였다. 2009년엔 김봉철씨의 억울한 옥살이와 약산의 네 동생을 포함한 ‘밀양 보도연맹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결정했다. 진화위 조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1950년 7월부터 8월까지 밀양지역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은 밀양경찰서 및 관할지서 경찰과 경남지구 CIC에 의해 연행되거나 소집 통보를 받고 자진 출두한 이후 밀양경찰서 유치장과 밀양읍 나카노 공장, 삼랑진 지서, 삼랑진역 강생회 지하창고 등에 구금되었다가, 1950년 8월 중하순경 청도군 매전면 곰티재, 밀양군 삼랑진면 안태리 뒷산, 검세리 깐촌 낙동강변, 미전리 미전고개 일대에서 집단 사살되었다. 조사 결과,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55명이고 가해 주체는 밀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국군 육군본부 정보국 산하 경남지구 CIC 대원으로 확인되었다. 군경이 적법 절차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평범한 민간인을 소집 구금해 집단 살해한 것은 반인도적이며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침해한 것이다.”

진화위는 이런 조사 결론에 따라 상응하는 국가의 사과와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위령사업 지원, 역사 기록 수정 및 등재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가 차원에서는 이렇다 할 사과나 후속 조처를 한 바 없다.

김용건씨는 진화위 결정을 토대로 법원에 백부 김봉철의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재심 신청을 해 무죄판결을 이끌어냈다. 그 직계 후손에 대한 민사 배상도 이뤄졌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 법원은 보도연맹사건 당시 학살당한 약산의 4형제 후손들이 낸 국가배상 민사소송에 대해 애매한 시효 논리를 내세워 기각 판결했다. 진화위 결정이 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내야 하는데 며칠 지나서 제출했으니 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였다. 김용건씨는 “21대 국회에서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이고 전향적인 법 개정이 이루어져 억울한 국가 폭력에 희생당하고도 이중 삼중으로 피해를 당한 국민의 눈물을 진정으로 닦아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부산 폭우로 3명 숨진 지하차도 피해자들, 구조 요청 전화 쇄도

23일 밤 쏟아진 폭우로 부산역 인근 초량 제1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차량 안에 있던 3명이 숨졌다.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23일 밤 쏟아진 폭우로 부산역 인근 초량 제1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차량 안에 있던 3명이 숨졌다.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23일 오후 9시38분. 부산경찰청 112종합상황실에 “차에 물이 들어오고 있어요, 빨리 도와 주세요”라는 다급한 여성의 목소리가 신고 전화로 들어왔다. 비슷한 시각 부산소방재난본부에도 비슷한 내용의 전화들이 쇄도했다. 부산 동구 초량동 제1지하차도에 폭우로 물이 차면서 고립된 차량에 타고 머던 시민들의 구조 요청 전화였다.

경찰은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다. 오후 9시38분과 41분에 순찰차가 현장에 도착해 지하차도가 침수된 것을 확인하고 차량 진입을 막는 조치 등을 취했다. 이어 119구조대가 도착해 구명튜브를 타고 구조 작업에 들어갔다.

부산 중앙대로와 충장대로를 연결하는 길이 175m, 왕복 2차로의 초량 제1지하차도는 출입구 높이가 3.5m인데 물이 2.5m 가량까지 이미 들어차 있는 상태였다.

침수된 지하차도 현장에는 차량 7대가 완전히 물에 잠겨 있었다. 구조대는 오후 10시40분쯤까지 6명을 차례로 구조했다. 10여분 뒤 60대 남성이 물에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오후 11시쯤 119 잠수부 3명이 투입되고 이어 2명의 잠수부가 추가로 투입돼 구조 작업을 진행했다. 물 위에서는 구조대 5명이 보트를 타고 있었고, 동시에 배수 작업을 진행했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인 24일 0시6분쯤 현장에서는 20대 여성을 추가로 발견했다. 심폐소생을 하면서 병원으로 급히 옮겼지만 숨지고 말았다. 수색 작업과 배수 작업은 이후에도 계속됐고, 바닥을 수색하던 잠수부가 24일 오전 3시쯤 40대 남성이 숨져 있는 것을 추가로 발견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측은 “피해자들이 물이 찬 차에서 빠져 나오려고 했지만 한때 지하차도 천장 가까이 순식간에 물이 차면서 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명의 사망자를 발견한 이후 구조대는 사고 현장과 침수 차량 등에 대한 추가 수색 작업 등을 진행했지만 더 이상의 피해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차량에서 빠져 나왔다 하더라도 지하차도에 차 있는 물의 수심이 깊은 데다 출입구까지의 거리가 멀어 자력으로 빠져 나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색깔론으로 정치 해보겠단 미몽에서 깨어나길”
“탈북민이 민주인사한테 사상전향 운운..개탄”
“통합당은 색깔론 꺼낸 의원들 엄정 조치하라”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0.07.24.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0.07.24.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김지훈 윤해리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24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빨갱이’ 색깔론 공세를 편 미래통합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해찬 대표가 “어제 통일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보면서 ‘아, 참 어이가 없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할 말이 아주 많은데 야당 입장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이상의 말은 삼가하도록 하겠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지도부의 성토 발언이 이어졌다.

전날 이 후보자 청문위원으로 참여했던 김태년 원내대표는 “어제는 철 지난 색깔론의 비타협적 투쟁, 집단 이기주의 등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일들이 동시에 한꺼번에 나타나서 아주 힘들고 답답한 하루였다”며 “70·80년대를 짓누른 색깔론 같은 낡은 시대 유령이 다시 나타난다면 코로나 극복과 글로벌 선도국 도약 꿈 실현을 지체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통합당을 겨냥해 “아직도 색깔론으로 정치를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야당이 있다면 하루빨리 미몽에서 깨어날 것을 당부드린다”고 촉구했다.

박광온 최고위원은 “색깔론은 고질병을 넘어 불치병 수준”이라며 “통합당은 ‘바뀌겠다’며 새 정강·정책을 소개한 뒤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인영 후보자에게 있을 수 없는 저열한 색깔론을 꺼내 들었다”고 날을 세웠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인영 통일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2020.07.23. mangusta@newsis.com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인영 통일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2020.07.23. mangusta@newsis.com

이어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우습게 봐도 한참 우습게 봤다”며 “사상 전향을 공개 선언하라는 것은 언어폭력이고 국민과 민주주의와 국회를 모독하는 행위다. 과거 인민재판 때나 있었던 망발”이라고 규탄했다.

박 최고위원은 그러면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행태다. 통합당은 색깔론 꺼낸 의원들을 엄정 조치하라”고 요구했다.

설훈 최고위원은 “사상전향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탄압 수단이었고 양심의 자유와 인권침해 논란 끝에 김대중 정부에서 폐지된 구시대적 악습”이라며 “태영호 의원은 국민의 대표로 나선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반헌법적 망언을 한 것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더불어 “미래통합당은 새로운 정강에 민주화 운동 계승 의지를 담겠다고 했는데 새 정강 밝히자마자 소속 의원이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하고 구시대적 색깔론을 꺼낸 것에 대해 통합당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0.07.24.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0.07.24. photocdj@newsis.com

이형석 최고위원은 “태영호 의원은 충성을 맹세했던 북측 체제를 버리고 남측으로 건너왔다. 이런 분이 민주인사한테 사상전향 운운하는 현실이 매우 개탄스럽다”고 일갈했다.

같은 당 윤건영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전형적인 색깔론이고, 악의적인 프레임”이라며 “국회의원을 그렇게 오랫동안 한 박지원 (전) 의원, 이인영 의원, 그런 분들을 친북으로 모는 건 쌍팔년도식 매도”라고 꼬집었다.

홍익표 의원은 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에서 “4선 국회의원에 원내대표까지 했던 분을 ‘주체사상 신봉자’로 전제하는 건 이인영을 뽑아준 국민, 특히 구로구민을 모욕하는 발언”이라며 “사상전향했냐고 물어보는 접근 방식이 매우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설사 그 사람이 주체사상을 신봉했다고 하더라도 우리 헌법에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헌법적 정신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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